과거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투영된 현재
무거운 이야기/정치 | 2008/11/25 11:30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위대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그 대표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history is a cou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유명한 일구를 남겼습니다. 이 문구는 그의 모든 주장을 단 한 문장 속에 함축하고 있어서, 책의 전후 맥락을 굳이 읽지 않아도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쉽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수정하겠답시고 학계의 일에 끼어드는 만행을 보였던 바 있습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전경련이라는 일개 이익 단체가 경제 교과서를 편찬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며 '이것은 미친 교육부가 교과서를 만드는 법이다'란 거친 표현을 통해 비난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사실 정부 권력 자체가 교과서의 편찬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더욱 악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대중의 사상이 파란 색인가 빨간 색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빨간 색이든 파란 색이든간에 관계없이 사상과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 그 자체입니다. 교과서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느냐 우편향되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시스템에 정부 권력이나 극단적인 이익 단체(전경련)가 개입할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끝나지가 않았습니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은 서울시내 고교생을 대상으로 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하겠다며 '현대사 특강'을 준비하였는데요. 강사진이 화려합니다. 안병직, 이영훈, 유석춘, 조갑제, 류근일, 복거일 씨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병직, 이영훈, 유석춘 등은 '뉴라이트'의 핵심 인물들로, 독립운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일제 강점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위안부 동원의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펼쳐 국민적 공분을 산 것은 물론 사학계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조갑제 씨등은 전쟁이나 쿠데타를 도발하고 장려하는 뉘앙스의 글을 써 극우 파쇼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며, 류근일 씨 등은 색깔론의 대표주자입니다. 복거일 씨 등은 영어공용화론 등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무리한 주장을 반복적으로 펼쳐 큰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입니다. 모두 우파라고 하기에 몹시 낯부끄러운 인물들로, 흔히 말하는 극우파 대표인사들입니다. (관련기사 디벼보기)
에드워드 카가 본다면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일지 모르지만, 그의 그 명구를 다소 곡해(曲解)하여 해석한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역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친일파 학자들, 극우 파쇼들이 '역사학'의 주류로 부상하고 민족주의 사학이 구식으로 취급되는 까닭은 우리의 현실 자체가 그렇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한 웹툰 작가는 그 만화를 통해 "나도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친일파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 질문이 (친일파에 대한 옹호로 읽힐 소지가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환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나는 나라를 팔아먹는 친일파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부동산 투기를 하는 사람을 일컬어 '복부인'이라고 부르며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땅과 집이 사람이 사는데 필수적인 재화 중에 하나인데 비해 그 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아 투기를 벌이면 집값이 너무 올라 집이 필요한 사람이 집을 살 수 없게 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병폐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람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부동산 투기를 벌이게 되었고, 이윽고 오늘날에는 그것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TV에 나와서 자랑스럽게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얘기하면서도 하등 부끄러움이 없지요.
사람의 생각에는 깊은 뿌리가 있어서, 여러 생각이 서로 다른 갈래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뿌리는 결국 한 곳에 단단히 박혀 있습니다. "사회적 병폐가 커지더라도 내 이익을 위해 부동산 투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가 위기에 빠져 내 일신이 위태로워지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놀랍게도 우리는 이런 이기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 부재,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부재, 시장에 대한 곡해 등, 썩어버린 뿌리의 상징을 바로 눈앞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욱 놀랍게도, 반수에 약간 못 미치는 수많은 사람이 그 상징을 '이 나라의 주인인 나'를 대신하여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물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서울시 교육감을, 국회의원을 그런 인물로 채워갔습니다. 모르고 뽑았다면 모르겠거니와, 그 사람의 여러 비행(非行)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를 뽑은 것이라면, 그 '비행을 눈감아줘야 한다'는 생각은 대체 어떤 근간 철학으로부터 나온 것일까요. 그런 판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외의 다른 생각은, 다른 문제에서의 판단은 선량하고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식민지 시대가 긍정적으로 재평가되고, 전쟁과 쿠데타를 부추기고 미화하던 인물이 고교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합니다. 과거의 식민지 시대와, 과거의 쿠데타와, 과거의 전쟁이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된다면, 우리의 현재는 대체 어떤 모습인 것일까요. 우리의 현재는 도대체 어떤 모습이기에 우리는 그 추악한 과거와 다과회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요. 여하튼, 록 가수를 닮은 한 인물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활짝 웃고 있는 것을 보며 그 해답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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