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전능 對 Just Draw 對 오드리 햅번
무거운 이야기/경제 | 2008/12/03 12:04
아임 오드리 햅번
LG CYON의 하반기 전략모델 시크릿(SECRET).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강화유리와 탄소섬유 등 새로운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잔흠집에 강했고, 때문에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그들이 광고모델로 선택한 인물은 바로 오드리 햅번. 그녀의 아름다움이 시대가 변해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안한 캐스팅이었다. 시크릿폰도 오드리 햅번처럼 시간이 지나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광고 내용은 이랬다. 오드리 햅번이 거리를 걷다가, 창을 통해 보이는 '시크릿' 폰을 바라본다. 그리고 광고 문구. "아임 오드리 햅번, 아임 블랙 라벨". 이게 전부다.
화면은 멋지게 뽑혀 나왔다. 고전과 첨단 휴대폰의 만남도 신선했다. 그러나 '왜'가 빠졌다. 물론 광고 기획자들은 오드리 햅번의 아름다움과 시크릿폰의 아름다움이 모두 '퇴색되지 않는다'는 뜻을 불어넣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아무 사전 지식 없이 보는 이 광고는, 그저 아름다운 모델이 나와 아름다운 휴대전화기를 바라볼 뿐이다. 이 광고 속에서 시크릿폰은 흔해빠진 예쁜 휴대전화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사실 광고의 기획 의도를 알아채기 위해선 최소한 '이 휴대전화는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여 기존의 휴대전화에 비해 흠집에 매우 강하다'는 사전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만져라, 반응하리라
LG의 경쟁사, 삼성의 메가히트 모델 햅틱(HAPTIC)의 광고문구는 두 가지. '터치, 다음은 뭐지?'란 얘기가 티저 광고를 장식했고, 뒤이어 정식 광고는 '만져라, 반응하리라' 란 문구가 채웠다.
이 광고문구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원래 터치스크린 폰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선점했던 건 LG CYON이다. 하지만 LG CYON은 수많은 터치스크린 폰을 발표하면서도 'Touch the Wonder'라는 평이하고 심심한 문구를 내걸었다. 그리고 같은 순간, 삼성은 햅틱을 '터치의 다음 기술'로 선전했다. 그리고 정식 광고를 통해서는 터치를 '단순히 만지는 것', 햅틱을 '만지면 반응이 오는 것'으로 규정했다. 시대의 흐름을 먼저 꿰뚫어보고 터치스크린이란 영역을 선점한 LG였건만, 광고전 한 방에 완전히 밀렸다. 오늘날 한국에서 터치스크린 폰의 대표주자는 누가 뭐래도 햅틱이다.
물론 알 사람은 다 안다. '햅틱이 터치의 다음 기술'이라는 것도, 햅틱이 기존 터치스크린 폰에 비해 한 세대 앞선 것이라는 것도 사실 어이 없는 소리다. 이 광고문구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져라, 고장나리라' 등의 비하적인 표현으로 패러디되곤 했다. 그렇지만 삼성 애니콜을 사기죄로 고소할 수는 없다. 이건 광고다. 그저 광고일 뿐이다.
Don't Touch, Just Draw
햅틱의 지배력에 대항하기 위해, 스카이는 새 터치스크린 휴대전화 프레스토(Presto)를 발표하며 이런 문구를 내건다. "Don't Touch, Just Draw". 만지지 말고 드로우만 하라는 이 문구는 아무래도 '더 많이 만지라'는 햅틱 2의 광고문구를 그대로 겨냥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메시지 또한 분명하다. 사실 터치스크린이란 신기술을 적용하고도 버튼(Button) 시대의 인터페이스를 계속 활용한다는 것은 무척 비실용적인 일이다. 터치스크린에는 터치스크린에 어울리는 인터페이스가 있고,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해 세계적 성공을 거둔 것이 아이폰(iPhone)이었다. 프레스토는 그것을 지적했다. '터치스크린에는 터치스크린에 어울리는 인터페이스가 있다, 그것이 바로 드로우(Draw)다'.
하지만 이상하다. 메시지가 이토록 분명하고, 또 절실한데도, 이 광고 문구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나온지 얼마 안 된 휴대전화의 성패를 함부로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이 휴대전화는 햅틱처럼 큰 반향을 일으킬 순 없을 것 같다. 스카이와 삼성의 점유율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전지전능, T*OMNIA
그리고 삼성은 또 하나의 전략 제품을 소개한다. T*OMNIA. 햅틱 인터페이스를 사용한 스마트폰으로, 100만원짜리 초고가 휴대전화다. 한국이 아직 스마트폰 불모지라는 점, 거기에 SK 텔레콤이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장사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을 볼 때 이 휴대전화기의 성공을 잠당할 수는 없다. (네트워크 기능이 특화된 스마트폰을 팔면서 데이터 정액제를 약정으로 묶지 않는다는 건 그걸 팔 생각이 없다는 얘기 아닌가.) 그러나 광고전에서만은, 삼성은 또 한 번 무척 인상적인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전지전능'.
OMNIA라는 모델명, 그리고 스마트폰의 지향을 뚜렷하게 표현한 문구다. 휴대전화 이상의 그 무엇,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손 안의 컴퓨터. 하지만 이 광고 문구에는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사실 그 특징이야말로 진짜배기다. 이 광고가, 최소한 광고 그 자체만으로는 또 한 번 성공하리라고 믿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햅틱 광고는 가지고 있었지만, 프레스토와 시크릿폰의 광고는 갖추지 못한 것이다.
한국어다.
광고 문구는 이성적으로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와닿는 것이 있어야 한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그 무엇인가가, 단 한 단어, 단 한 문장 속에 함축되어 있어야 한다.
세계화 시대든 뭐든 간에, 우리는 어쨌든 하루 대부분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글을 읽으면서 산다. 한국어를 듣고 말할 때 우리는 굳이 복잡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 가끔씩은 자기가 뭔가를 얘기해놓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를 잊어버려 상대에게 반문하기까지 할 정도니 말이다. 모국어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본능적인 과정인 모양이다. 반면 영어를 듣거나 읽었을 때, 우리의 머리는 한 차례 해석을 거친다.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뒤에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이다.
광고는 15초, 그리고 중심 문구는 단 한 마디 뿐이다. 순간적으로, 직관적으로 '느낌'이 오지 않으면 시청자의 뇌리에선 금방 잊혀진다. 그런데 그 한 마디를 영어로 만들다니, 몹시 비효율적인 일 아닌가? 단 한 방에 소비자의 가슴을 직격해야 하는데, 영어 문구는 '해석'이 필요하다. 소비자의 가슴에 도달하기까지 한 단계가 더 필요하단 얘기다.
모르겠다. 훌륭한 광고 기획자들이 고작 이런 단순한 사실을 몰라서 영어로 광고 문구를 제작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더 세련되어 보인다든지, 광고주가 영어 문구를 원한다든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무슨 분석 씩이나 되는 소리가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그냥 한 번 나불거려 본 가십거리일 뿐이다. 그리고 대왕 세종의 종영을 기념하여(?) 모국어의 가치를 '자본주의적'으로 한 번 바라보자는, 그저 그런 환기일 뿐이다.
1줄 요약 : 하지만 정작 근 수 년간 삼성 휴대전화 중 끌리는 모델은 단 하나도 없었다능
ⓣ http://yeinz.kr/blog/trackback/456 (주소를 클릭하면 클립보드로 복사됩니다.)

훌륭한 분석인 듯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줄의 대반전 ^^
근데 뭐 근 몇년간이라는 전제를 붙이지 않아도, 삼성 휴대전화는 디자인이 영 혐짤이라... -_-aa;;;; 특히 내부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뭐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좀 다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