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대학교를 졸업한 풋내기 사회인이 어떤 정책에 대해 정답과 오답을 판단한다는 건 참으로 오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블로그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화, 대화,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끝없이 대화하는 것.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분 없이 누구나가 원탁에 앉아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 일개 한의사가 경제에 대한 논쟁에서 경제학 박사를 향해 '당신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것.

한편,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정말이지 엄청난 권한과 더불어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책임도 함께 부여한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가끔씩 자신이 슈퍼맨이 되려는 시도를 한다. 모든 것을 자신이 정하고,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으면 목을 내놓고 고언을 하더라도 내친다. 그러나 내가 아는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에게도 대화가 필요하다. 그는 조율사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신념과 철학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국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한다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고 해서 그 목소리만 들을 수가 없다. 가끔은 눈물을 머금고 자신이 원치 않는 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이 4천만의 목소리를 한꺼번에 들어야 하는 대통령의 숙명이다. 고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호불호를 말하라면, 아무래도 호(好) 쪽으로 마음이 많이 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임기동안, 그리고 그 평생동안 참 멋진 일도 많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찬성하기 힘든 정책도 많이 폈다. 하지만 그 모든 정책에 대한 호불호를 접어두고 생각해보건데, 그야말로 지금까지의 권위적인 대통령상을 걷어낸 '원탁의 대통령'이 아니었던가. 누군가는 위원회 정치라고 혹평했지만, 그 위원회야말로 사실 민주주의의 정신이 가장 잘 살아있는 조직이 아닌가. 평검사와 직접 대화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 나서 돌파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대통령. 일개 한의사조차 그를 대면할 수 있다면, 편안히 내 가진 괴로움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일 수 있을 것 같은, 나와 같은 자리에, 원탁의 맞은 편에 앉은 그런 대통령.

혹자의 생각처럼 그것이 설령 쇼였을지언정, 그는 처음으로 봉건 국가의 '왕'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대통령'이 무엇인지 보여준 대통령이었다. 그는 원탁의 대통령이었으며, 치기어린 나의 유년기에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고 논쟁할 수 있게 해 준 한국의 지도자, 나의 리더였다. 신(神)이 자살을 일컬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 했을지언정, 부디 정치와 오욕이 없는 곳에서, 은퇴 후 늘상 거닐던 그 봉하마을에서 편안하시기를 바란다. 다시 또, 진심을 담아, 편안하시기를 바란다.


2009/05/23 16:16 2009/05/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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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악당이 되었어야 한다. Silver Side Up! Story. 에서 트랙백 | 2009/05/24 17:05 | 지우기 |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이 되었어야 한다. 세상 모든이들의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소신을 가지고 여지껏 해왔듯, 작은 것 하나씩 하나씩 세상을 바꾸어 주는 노력이 필요했어야 했다. 스스로가 선택한 삶이었잖나? 대통령이 되고자 한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었지 않나! 검은 수트를 쓰고 더러운 세상을 바꾸어보려는 큰 뜻을 품었지 않았었나!!!You either die a hero or you live long enough to see yourself become...

  1. 멀리서 2009/05/23 23:17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정말 가슴이 아파오네요.
    왜 세상이 자꾸만 미워지는지.
    모두 행복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2. XROK 2009/05/24 17:05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예인 2009/06/03 17:12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우울하거나 슬퍼하거나 눈물 흘리지는 못했지만......
    아쉽습니다. 참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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