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
무거운 이야기/정치 | 2009/05/26 01:23
건너오는 글 : 국방력

서거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별명도 참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것이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라는 것이었다. '좌파 신자유주의자' 만큼이나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 말 속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편 국방정책의 모든 것이 녹아들어 있다. 그는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대규모의 예산을 쏟아부어 우리의 국방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나라의 국방력은 더욱 강력해져야 한다. 정말이지 아주 강력해져야 한다. 우리의 국방력이 북한에 비해 나은가, 뒤지는가 하는 논쟁은 사실 여기에선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목적은 북한을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은 전쟁 자체를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므로 - 억지력(抑止力)을 갖출 정도의 군사적 역량이 필수적이다. 이런 억지력을 갖추려면, 물론, "미국 님하가 우리를 지켜줄 거라능 뿌우" 하는 식의 현실 인식으로는 여러모로 곤란한 점이 많을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미국의 군사력을 전략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에 걸맞은 군사적 역량을 갖추는 것이 못잖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 군사적 역량을 갖출 것인가? '돈'만큼 확실한 정답이 또 있겠는가 싶다. 무기를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 첨단 기술을 도입하거나 개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군인들을 강력하게 무장시키고 선진화된 훈련기법으로 훈련시키려면 역시나 돈이 필요하다. 정말이지 쏟아붓는 수밖에 없다. 무기를 사고 기술을 도입하고, 선진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강력한 무기와 기술을 운용할 수 있도록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기술과 경영, 이 두 가지는 어디에서나 발전을 주도하는 두 기둥인 것이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 모르지만, 컴퓨터가 나온 이 시대에, 컴퓨터 도입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의 정신력이라며 14박 15일로 주판 사용법 합숙 훈련을 시킨다면 이 얼마나 기괴한 일인가.)
고로,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하늘 아래에서 첨단 무기와 선진 기술의 도입은 '우파 정부의 등장으로 한미동맹이 굳건해졌으므로 괜찮다'는 동화속 얘기나 하며 취소해 버리고, 대신 쌍팔년도 기술에 딱 알맞은 천리행군이나 시키고 있다면 이건 정말이지 우울하기 짝이 없는 현실 인식인 것이다. 또한 정보화 사회에 걸맞은 첨단 보안 기술을 도입하는 대신, 장하준과 노암 촘스키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여 보안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더욱이 우울한 일인 것이다.
우리는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국방력 강화 프로젝트였던 '국방개혁 2020'을 누가 무력화시켰으며, 또한 누가 국방 예산을 대폭 축소시켰는지 알고 있다. 심심찮게 대북 강경책을 쏟아내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을 두려워하며 '호국'을 부르짖는 애국자들은 여전히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지지한다. 대체 왜 그럴까. 천리행군을 부활시키고 금서를 지정하여 국방력을 강화시켰기 때문일까. 북한에 연일 강경한 발언을 하여 북한과 내통하는 '빨갱이'가 아님을 증거하였기 때문일까. 정부가 우파라는 이유만으로도 한미동맹이 자동으로 굳건해지기 때문일까. 정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더 강력한 국방력, 나아가 억지력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그 '애국자'들 또한 모르는 것이 아닐 터이다. 하지만 '애국자'들은 정작 그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는 증오한다. 그가 북한에게 계속 자원을 퍼줌으로써 북한과 내통하는 '빨갱이'임을 증거하였기 때문일까. 애국자 자신들에 비해 오늘날 군대의 군기가 '빠진' 이유가 노무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2차 북핵 실험이 다시금 한반도를 뒤흔들고 있는 오늘에 이르러,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라본 '강력한 미래'를 잠시 엿본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건 정말이지 우울한 역설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방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국경 건너편에는 군사적 위협을 국제정치에서의 협상 카드로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북한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라는 변수가 존재함으로써, 강의석 씨가 꿈꾸던 '맨몸으로 총칼 앞에 나섬으로써 도리어 총칼에 저항력을 가질 수 있는' 역설은 우리나라에선 일어날 수가 없다. 고로, 우리에겐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가 정말이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화와 복지를 꿈꾸는 좌파에겐 복지에 투입해야 할 예산을 국방에 쏟아붓는다는 이유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정작 그를 지지해야 마땅했을, 호국과 군사력 강화를 부르짖던 애국자들은 '군사력 강화에 큰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빨갱이가 하는 일은 믿을 수가 없으므로' 증오하였다. 사실 이 애국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든 '그가 빨갱이임에 분명하므로' 증오했을 것이다. 그는 꿈을 꾼 댓가로 모두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끝내, 그 증오 속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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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집니다.
예인님의 글은 언제나 가운데 뭔가 딱딱한 칼슘(또는 다른 것)으로 이루어진 무언가 있군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아쿠, 감사 감사..... (칼슘이 무언지는 잘 모르겠지만;; )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 '남조선의 호전광' '밀덕후들의 산타클로스'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말놀음보다야......
무슨무슨 전우회, 무슨무슨 향우회, 호국영령이 블라블라 하는 아저씨들은 그냥 닥치고 안보니 국방이니 하며 노무현을 까고 이메가를 지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죠. 사람들은 그런 아저씨들을 까면서도 사실 이런 국방이나 안보나 하는 이슈에서 이명박이 노무현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게 제대로 틀린 생각이라는 걸 데이터를 통해 입증해내야지요. 그 작업은 여러 밀덕 사이트의 밀덕후들이 열심히 해 주신 고로 저는 나중에 여유가 나면 정리나 좀 해 볼까 합니다. ㅎㅎ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서해교전이 있었고, 4대 강 사업의 착공일이었다는군요.
전 노무현 대통령과 국방비로 땅파는 현 대통령이 비교되어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 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들어왔습니다.
참 아이러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