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충청도의 한 작은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목사는 위대한 예언자였던 하바쿡(Habakkuk, 하박국)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하바쿡이 살던 시대는 -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 법이 땅에 떨어지고 정의가 무너진 시대였으며, 못된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을 죽이는 시대였다. 보통 예언자들이라면 그저 정결한 마음으로 야훼의 신탁을 기다리기만 했겠지만, 하바쿡은 이에 대해 마치 따지듯이 호소하였다. "이 억울한 현실을 대체 언제 풀어주시겠습니까?"

목사는 하바쿡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한 뒤 화제를 돌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척 떨리고 있었다. 그는 '못된 사람들이 착한 사람을 죽였다'고 얘기했다. 아주 긴 시간동안 기득권을 축적해왔고, 그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사악한 방법을 동원하는 이들이 있으며, 그들이 노무현을 죽인 것이라 얘기하였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노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못된 사람들'이란 알기 쉬운 표현을 썼는데, 맥락을 되짚어 볼 때 그 '못된 사람들'이란 곧 앙시앙 레짐을 의미하는 것임에 분명해 보였다. 목사는 스스로 하바쿡의 입장이 되어 야훼께 이렇게 호소하였다. "이 억울한 현실을 대체 언제 풀어주시겠습니까?" 그 얘기는 다시 말하자면 이런 얘기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앙시앙 레짐은 대체 언제나 무너지는 것입니까?"

그 앙시앙 레짐이란 무척이나 복합적이다. 한나라당이나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지극히 '구체화된' 부분이다. 그들은 대놓고 악(惡)하다. 그래서 우리가 공격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시민이 지적하였듯이, 우리는 모두 앙시앙 레짐의 자식이다. 앙시앙 레짐이란 개념은 훨씬 폭이 넓다. 심지어는 앙시앙 레짐에 대적하던 386, 운동권조차도 그 내부에는 정말이지 수구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지 않았던가. 고로 앙시앙 레짐이란 어떤 구체화된 적(敵)이 아니라, 우리 사회, 우리 개개인이 가진 모든 구체제적 모순을 의미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노무현을 죽인 앙시앙 레짐의 깊숙한 곳에는 바로 그 목사가 적을 담고 있는 '교회'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구체화된 형태로. 물론 종교의 특성상 목사는 교회 밖에서 홀로 설 수가 없다. 그런 딜레마는 누구에게나 있다. 앙시앙 레짐의 종말은, 그 앙시앙 레짐의 그림자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나에게도 고난일 것이다.

하바쿡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늘상 종교는 가장 쉽게 타락했다. 거짓 예언자들이 판을 치고, 썩은 정치가들과 야합하여 국민의 고혈을 쥐어짜는데 야훼의 말씀을 함부로 써먹었다. 언제나, 야훼의 심판은, 야훼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줄 알았던 바로 그 교회에 가장 먼저 내려졌다. 그것을 알면서도 하바쿡은 "이 억울한 현실을 풀어 달라고" 소리쳤다. 그것이 자신에게도 큰 고난과 괴로움을 가져올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로부터 긴 세월이 지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목사는 "앙시앙 레짐을 무너뜨려 달라고"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긴 것일까. 자신이 있는 곳이 곧 앙시앙 레짐의 일부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로 "억울한 현실을 풀어 주는 것"이, "앙시앙 레짐이 무너지는 것"이 곧 자신에게도 큰 고난과 괴로움을 가져올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왕 하바쿡의 이야기에서 시작했으니 하바쿡의 이야기로 끝을 맺어야 할 것 같다. 하바쿡은 이러한 신탁을 얻었다.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그리고, 모든 악인이 죄를 받으리라. 하바쿡은 그 신탁에 감동하며, 아무리 큰 고난과 괴로움이 닥치더라도 환성을 올리고 기뻐 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받은 신탁을 기록하며, 그 신탁을 수금 반주에 맞추어 노래로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그럴 수 있을까. 정녕 나는 의로운 사람일까. 앙시앙 레짐의 환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일까.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하바쿡처럼, 그 목사처럼 그 고난과 괴로움을 감내하고서라도 앙시앙 레짐이 종말을 맞기를 '정말로' 바라고 있는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다가 결론을 낸다.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말자. 어떤 일렉트로니카 밴드가 일갈하였듯이,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자. 정녕 야훼의 신탁대로 앙시앙 레짐이 무너질 수 있다면, 고난과 괴로움이 닥치더라도, 환성을 올리고 기뻐 뛰어야 할 일이다. 이 모든 역사를 기록하여,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일이다.


2009/06/01 21:39 2009/06/01 21:39

http://yeinz.kr/blog/trackback/496 (주소를 클릭하면 클립보드로 복사됩니다.)

  1. starrynight 2009/06/02 19:24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이제는 누구나 실감하고 있을 텐데, 실감에서 그친다는 게 슬픕니다.

  2. 예인 2009/06/03 17:05 | PERMALINK | 고치기 |

    거기서 그치지 않도록 개개인이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민주주의니까요. ㅎ

  3. adghj 2009/06/03 10:47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저...글좀 담아가도 될까요??

  4. 예인 2009/06/03 17:05 | PERMALINK | 고치기 |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출처까지 표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슴다. ^-^

  5. 광장 2009/06/03 21:43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글 담아가고 싶네요 저는 공감가거나 좋은글은 개인 소장으로 제 컴에 저장해 가끔 꺼내 읽기도 하지요 그래도 되지요?
    (사실 이말 저말 주저리 늘어 놓은 댓글을 썼다가 쑥쓰러워 그냥 지웠습니다. 속상한 맘에 할말이 많아지다보니 글솜씨도 없는데 장문까지 가는 바람에.....ㅠ)

  6. 예인 2009/06/11 18:20 | PERMALINK | 고치기 |

    댓글 너무 늦었네요. 이 블로그의 모든 글은 담아가기에 전혀 제약이 없스빈다 ㅎ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