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군사적으로 남한을 압도했던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한국전쟁이 발생했다.

어릴 때만 해도 국민학교(오늘날의 초등학교)에서는 반공 교육을 중시했다. 한국전쟁에 대한 비디오 자료를 틀어준 뒤 그 감상을 표어나 포스터, 글짓기로 만들라는 교사의 '명령'이 열 살 남짓한 아이들에게 내려졌다. 문제는 그 교육의 내실이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교육은 아이들을 세뇌라도 하려던 것인지 계속적인 반복 구성을 띄었는데, 실질적인 내용은 위의 한 줄에서 전혀 덧붙일 것이 없었다.

물론 중요한 내용이다. 특히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부분은 한국전쟁의 본질을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한국전쟁은 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전쟁이었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단 한 줄의 건조한 사실로 서술하기에는 한국전쟁에는 복잡한 전후사정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 직전까지 이승만 대통령은 무력통일을 주장한 반면 김일성은 평화통일을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김일성의 평화통일 제안은 남침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으나, 적어도 우리나라가 늘 평화통일만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전쟁이 6월 25일의 '평화로운 새벽' 갑작스런 남침으로 발생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1949년에서 1950년까지 국군과 북한군 사이에 약 800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으며, 개중에는 고지 점령까지 이어진 것도 있었다고 한다. 혹자는 이러한 점에 근거하여 6월 25일은 한국전쟁의 '발발일'이 아니라 '확전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여러 문서화된 증거 - 김일성 등이 남침을 미리 계획하고 있었다는 - 때문에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소수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다. 27일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탈출한 이승만 대통령이 훗날 예고 없이 한강다리를 폭파,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유명하다.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황을 역전시킨 한국전쟁의 영웅이기도 하지만, 확전을 위해 수십 개의 핵폭탄을 투하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후에 참전한 중공군은 인해전술을 통해 아군을 압박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폈다는 근거는 빈약하다. 오히려 중공군은 장기간의 내전으로 단련된 야간 기동, 게릴라 전략을 주 전략으로 채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이미지'가 '진실'과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1950년 6월 25일 군사적으로 남한을 압도했던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한국전쟁이 발생했다는 것은 비교적 명백한 진실이다. 그러나 그 외의 내용들, 전쟁의 과정에 대한 일련의 '곁가지' 서술들은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기보다 일종의 도시 괴담에 가까운 형태를 띄고 있는 것들이 많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의 급격한 우경화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는데, 한국전쟁으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북한군의 전쟁수행능력이 우리를 압도한다는 인식이나, 이승만 대통령이나 맥아더 장군에 대한 과도한 영웅화 등이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이어져내려온 이러한 괴담이 오늘날에도 실제 안보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 북한은 '평화로운 새벽'에 갑자기 남의 나라에 쳐들어올 만큼 무질서한 나라인데, 도대체 몇십 년 째 북한 정부의 총예산을 압도하는 국방비를 쏟아부어도 북한의 국방력은 남한의 국방력을 압도하며, 당장 굶어 죽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수행 능력조차 남한을 능가한다. 이런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투입하는 돈에 비해 더 큰 결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괴담에 따라 소위 '애국자'들은 국방 예산을 '한도 끝도 없이'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별 대책이 되지 않고, 미국의 힘이 없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북한의 국방력을 압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미국을 사랑하고 북한을 증오하는 것 뿐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도출한다. 예전과 같이 우리나라의 국력이 피폐해졌을 때는 이런 결론이 나름 안보 강화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미국 등 우방에 의지하지 않고는 경제 발전이나 국방력 강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나라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오늘날에도 이런 논리가 안보 강화에 '정말' 도움이 될까? 아니라고 본다.

또한 이런 인식은 한국전쟁이 일으킨 또 하나의 비극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부정하게끔 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태극기 휘날리며> 등은 남/북 정부가 경쟁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하던 한국전쟁의 '어두운 역사'를 묘사하고 있다. 여러 근거를 볼 때, 당시 북한군과 아군은 치열한 영토 다툼을 벌이면서, 점령한 땅에서 각기 민주주의자/공산주의자를 축출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의 양민학살 - 거창 양민학살 등 - 을 자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단순히 "남한은 100% 정의의 편이었고, 북한을 증오해야 한다"는 식으로 한국전쟁을 인식해 버리면, 이 당시 실제 우리나라 공권력에 의해 일어났던 양민 학살 사건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몹시 난감해진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공권력의 책임을 인정해 버리면 우리 정부의 '완벽한 정의로움'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이조차 "양민학살을 한 것은 국군이지만, 양민학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한국전쟁과 공비 침입이므로, 모든 탓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있다"는 식으로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게 된다. 심지어는 "양민들 중 실제로 공산주의자가 있었기 때문에 양민학살은 정당했다"는 식의 논리마저 나온다. 그리고 이것이 '안보관'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한국전쟁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함으로써, 우리는 그 비극을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가고 있다. 국방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 판단 대신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러브콜이 비정상적으로 중시된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첨단 무기와 선진화된 기술을 군에 도입하려던 대통령은 빨갱이 취급을 받으며 '애국자들'에게 모욕당하는 반면, 일개 회사의 사옥을 건설하기 위해 공군 비행장마저 이전하는 어떤 대통령은 칭송받는다. 좌파는 설 자리를 잃는다. 종북(從北)을 지향하는 사이비 좌파들은 오히려 그 종북 성향을 꼭꼭 숨기고 그 결속력을 자랑하며 끝끝내 생존한다. 반면 진정한 좌파로서 '당연하게도' 북한 지도부를 미워하는 좌파가 도리어 쪼그라든다. 어차피 둘 다 친북 좌파에,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추종자로 취급당하는 탓이다. 광복, 4.3.사건, 한국전쟁...... 대한민국은 그 그림자로부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의 비극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가장 먼저, 슬퍼해야 한다. 위대한 무명 용사들을 기리고 그 희생에 슬퍼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방의 중요성을 되새겨야 한다. 한미동맹을 공고히 구축하고 우리의 자체적인 국방 능력을 키워야 한다. 천리행군이 부활하면 국방력이 강해질 거라고 주장하는 멍청한 군국주의자 대신 정말 첨단 무기와 선진화된 기술을 우리 군에 도입하려 하는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 다툼이 부른 가슴 찢어지는 비극을 되새겨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나 제국주의자의 악명을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어갔던 그 기억을 되새겨야 하며, 아직도 '친북 좌파' 같은 악명을 뒤집어씌워 자신의 반대파를 죽이려 하는 앙시앙 레짐의 자식들을 배척해야 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금 모든 무명 용사들을 기리며, 슬퍼해야 한다.


2009/06/25 21:27 2009/06/2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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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영호 2009/06/26 11:51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이 글을 읽고 감동받았습니다.

  2. seob 2009/06/29 10:02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여운이 있는 글이군요. 글을 읽으며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역사는 근대이후로는 색깔이 없는 모노톤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시간대에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이 여러사람들의 입장에서 각기 다르게 보였을 것인데 전부 한가지 색깔로만 칠해저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사실들과 입장들, 의미들을 보다 잘 살펴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인데.... 뒤늦게 나마 6.25 전쟁 영령들을 기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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