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박정희 정권이 흔들린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는데, 사실 어떤 한 가지 견해만이 옳다고 보기는 어렵고, 유신 시대는 아무래도 정치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전체적으로 '막장'에 가까운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박정희 정권을 붕괴로 몰아간 요인으로 정치 분야에서 '유신헌법'이 있다면, 경제 분야에서는 '조세저항'이 있었다.

부마사태는 박정희 정권의 붕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일반적인 인식에 따르면 부마사태는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투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부마사태의 본질은 과도한 조세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종합소득세제와 부가가치세제를 도입, 소득세와 소비세를 모두 증세함에 따라 자영업자들이 박정희 정권에 등을 돌렸던 것이 부마사태의 단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금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증세를 통해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채웠을리는 만무하고, 아마 이를 통해 소위 - '근대화'를 마무리지을 재원을 마련할 심산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에 향수를 가지고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손꼽는 것을 보면 이 '근대화'가 당시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했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조세저항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폭정과 유신에도 꿋꿋했던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했다. 나라가 하는 일은 쉽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정말이지 강렬하게 실감이 되기 때문이리라.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에 맞서 4대강 살리기니 뭐니 하는 예산을 편성하면서 세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일부에서는 부가가치세 인상 논의도 들리고, 전기요금이 너무 낮아 전기를 낭비한다며 전기요금을 높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기요금은 엄밀히 말해 세금은 아니지만.)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앙시앙 레짐 스스로가 종부세 문제를 조세저항까지 몰고 간 전력이 있으니만큼 증세가 얼마나 위험한지 익히 알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당시 앙시앙 레짐은 종부세에 대한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구세대적 색깔론에 조중동 등 언론의 왜곡 보도까지 총동원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종부세가 일부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그리 '쎈' 세금이 아니었던 탓이다. 액수는 꽤 컸지만 극히 일부의 부동산 부자들에게만 부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나 전기요금 인상은 종부세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는 액수는 작아 보일지 몰라도, 부가가치세나 전기요금을 내는 사람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전 국민'이다. 전 국민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실감한다는 얘기다. 그것도 종부세 폐지 따위의 부자 감세를 두 눈으로 목도한 직후에 말이다. 절대적 박탈감은 물론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낄 것이다.

색깔론에 언론까지, 조세저항을 막기 위해 총동원한다 한들 그 폭풍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어렵지 싶다.


2009/06/26 23:41 2009/06/26 23:41

http://yeinz.kr/blog/trackback/507 (주소를 클릭하면 클립보드로 복사됩니다.)

  1. 간접세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급진적 생물학자 Radical Biologist 에서 트랙백 | 2009/06/27 16:39 | 지우기 |

    1773년 12월16일 모호크 인디안으로 가장한 미국인들이 보스턴항에 정박한 영국 동(東)인도회사 선박에 잠입해 차(茶)상자들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미국 독립혁명으로 이어지는 유명한 '보스턴 티 파티'사건이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1740∼80)가 가을수확에서 세금내고 남은 식량이 부족한 농민들 실상을 보고 받자 "빵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했다는 소문이 혁명의 불씨가 됐고 그녀는 단두대에 올라야 했다. (한국경제, 20..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