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성 징병 문제는 썩은 떡밥이긴 하다. 어쨌든 일전에 여성 징병 떡밥, 법은 어려워라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거기에 흥미로운 리플이 달렸다. 리플이 달린지 네 달만에 반응해놓고 '흥미로운 리플'이라고 하는 게 좀 민망하긴 하지만...... 저 글은 사실 '법의 해석'이 상당히 자유분방하구나, 라는 느낌을 받고 그 쪽에 초점을 맞춰 쓴 것이라서 남녀 징병 문제를 깊게 논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문제가 또 헌법재판소에 올라가면서 갑자기 그 얘기를 좀 진지하게 하고 싶어진 것이다.

어쨌든 그 리플의 요점은 이것이었다. 군대 문제는 '남녀구도'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가는 자와 가지 않는 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 '가지 않는 자'에는 즉 장애나 질병, 신체 능력의 부족 등으로 현역병으로 복무하지 못한 사람들도 포함된다. 사실 이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이긴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본다.

현실을 따져 보자. 실제로 군대에 징병되는 사람은 100% 남자다. 군대에 징집되지 않는 사람은 모르긴 몰라도 9할 이상 여자일 것이다. 이런 현실을 굳이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구도만을 가져오게 되면 사실 핵심적인 문제가 희석된다. 징병 문제에 대한 남녀간의 인식차가 너무 커서, 의견의 조율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논쟁이 끝이 안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인 사회에서 남녀간의 차별이 엄존한다는 점은 이런 문제에서 남성 편을 들기 어렵게 만든다. 시쳇말로 찌질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게다가 남녀 구도란 게 너무 민감해 한 번 논쟁이 점화하면 워낙에 시끄러운데다가 그 내용이 결국 된장녀니 꼴페미니 개마초니 하는 '찌질한' 논쟁으로 귀결되다 보니 이를 회피하려고 굳이 이런 - '정치적으로 올바른' 구도를 가져오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모든 국민이 '현역병'으로 징집되어야 한다거나, '현역병'에게만 특혜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병역 문제에서 남녀구도는 오히려 합리적인 구도로 보인다. 다음은 병역법 3조 1항의 내용이다.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는 헌법과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법에서도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남자'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군대에 가는 것은 물론 공익근무를 수행하는 것이나 기타 대체복무를 수행하는 것, 또는 제 1 국민역, 제 2 국민역 등으로 배치되는 것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 병역의무에 속한다. 모든 남성들이, 정말 심각한 장애나 질병이 있지 않은 이상 수행하는 일이다. 한편, 아수라 백작이 아닌 이상 '남자'가 아닌 사람은 '여자'다. 즉 '여자'는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필요가 없다. 설령 그녀가 김연아 급의 체력을 갖고 있더라도.

물론 헌법에 규정된 '국방의 의무'는 '병역의 의무'보다 훨씬 범위가 큰 개념이다. 따라서 오직 남자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여한 병역법과,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를 부여한 헌법은 서로 상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해석의 문제일 뿐이다. "사실 당신이 지금 이 땅에 살아있는 그 자체도 인구를 늘림으로써 '국방'에 기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당신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셈이다." 사실 이런 설명은 헌법재판소가 병역법을 합헌으로 판결하기 위한 일종의 말장난이지, 사회적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정당한 설명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 얘기는 건너오는 글인 여성 징병 떡밥, 법은 어려워라의 숨은 결론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래서 여자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게 하여 대체복무나 제 1 국민역, 제 2 국민역 등으로 편입시킬 것을 주장해야 할까? 그런 얘기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찌질이' 소리 듣는 게 무섭기도 하지만, 사실 여성은 사회 여러 곳에서 많은 차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잠시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남녀 차별을 모두 걷어내고 순전히 병역 문제만 생각하도록 하자. 남자만이 병역의 의무를 진다는 사실, 그 자체는 사실 확실히 역차별의 소지가 있다. 특히 실제 대부분의 남성이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시점, 즉 학생 시절에는 남녀 차별 문제가 거의 도드라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역차별 정서가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 이 찌질한 논쟁을 끝낼 해답은 무엇일까. 서울대학교 법학과 강의석 군의 답안지에는 아마 이런 답이 써 있을 것이다. "군대를 없앱니다." 패스. 슈퍼주니어의 강인에게 보낼 선물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는 예인고등학교 1학년 김탱구 양의 답안지에는 아마 이런 답이 써 있을 것이다. "군대를 선진화하여 남성들의 역차별감을 해소합니다." 패스. 예인초딩학교 3학년 김똘똘 군의 답안지에는 이런 답이 써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여성이 받고 있는 차별을 혁파함과 동시에 남녀 모두에게 병역 의무를 부여합니다." 역시 패스.

이런 얘기가 답이라고 나온다. 정말이지 이상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지구는 예인초딩학교 3학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개한 사회인 고로 현실화될 수 없다. 결국 결론은 현시창. 남녀 차별도 남는다. 그리고 그 남녀 차별이 여자가 병역의무를 지지 못하는 근거가 된다.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여해선 안 된다는 주장의 대표적 근거인 "여성에겐 모성보호의 사회적 요구가 있다"거나 "여성은 신체구조상 정예군이 되기 어렵다"는 등의 얘기는 사실 남녀 차별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마초들의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미개한 사회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는 남녀가 능력에 따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어디에서나 같은 권리를 가질 것이며 또한 같은 의무를 질 것이다. 그럼 여자가 병역의무를 지지 못할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아니, 사실 그때 쯤 되면 군대가 다들 모병제로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아마 이럴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한다. 한 100년 정도 있으면 현실화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그냥 100년만 시끄럽게 논쟁하며 지내는 게 어떨까 한다. 어차피 답이 없는데 뭘 어쩌겠나, 하면서.

1줄 요약
지금까지 진지하게 읽으신 분들은 낚이셨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저 '롱'으로 끝나는 제목입니다.


2009/07/16 19:05 2009/07/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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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인테일 2009/07/16 21:03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하지만 여성계에서 앞으로도 이렇게 국방 문제에 있어서 '밥그릇'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여성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2등 시민'으로 남을 수 밖에 없겠지요. 페미니즘은 남성이 하는 것을 여성도 할 수 있고 해야한다는 것이지 단순히 여성이 남성만큼 인생을 즐기고 살겠다는 헛소리는 아니거든요.

  2. starrynight 2009/07/16 22:09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길거리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을 사라지게 하는 여성 징병제를 절대 반대합니다;;;
    이것이 진짜 마초적인 생각입니다. 움하하;

  3. 아크몬드 2009/07/16 23:21 | PERMALINK | 고치기 |

    그런 시각도 있군요...ㅋㅋ

  4. 할램디자이너 2009/07/17 01:46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대한민국 남녀차별 그리 심각하진 않죠 오히려 외모차별이 심각하다 생각합니다...예쁜 여자에게 있어 이 사회는 천국 but 못생긴 여자에 있어 이 사회는 미개한 곳으로 느껴지겠죠..차별은 차별대로 받고 군대가라고 한다면 저 역시 억울할 꺼 같네염...ㅋㅋ

  5. 비밀방문자 2009/07/18 01:28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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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푸르메 2009/07/20 18:09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군대문제는 정말 시궁창 싸움입니다. 항상 이런 이슈가 나오면 그 관련 게시판은 정말 끝을 보더군요... '롱' 정도로 끝내는게 정신 건강에 좋겠지요 ^^;; 예인님 글 잘 읽고 갑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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