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도 없고 철학도 없다 - '백신 의무화' 논란
무거운 이야기/IT | 2009/07/21 16:44
방통위에서 "백신을 깔지 않으면 포털 사이트를 이용할 수 없게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우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기본적인 원칙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얘기였다. 인권 하면 알러지 반응부터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이건 개인 PC의 백신 탑재 유무를 정부 또는 기업에게 알려주는 스파이를 PC 내에 심는다는 얘기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어떻게 발전할지 모른다. 게다가 뭐든지 '의무화' 하고 보자는 방법은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원칙에도 맞지 않다. 이건 시장 경제가 아니다. 사회주의, 그것도 오늘날의 실정에 맞게 잘 가다듬어진 유럽식 사회주의가 아니라 과거 유신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폈을 법한 교도적인 사회주의다.
그런데 사실 이런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이건 기본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제안이었다.
PC가 백신을 탑재했는지 탑재하지 않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고객의 PC에 '스파이'를 심어놓아야 한다. 사용자가 백신을 일단 깔았다가 다시 지울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스파이는 포털에 접속할 때마다 활동하고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스파이는 ActiveX다. 단 부작용. 물론 이 스파이가 백신 탑재 유무만 검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ID와 비밀번호도 빼갈지 모른다. 물론 나쁜 스파이라고 해서 "나는 ID랑 비밀번호를 빼내러 왔어요"라고 말하진 않는다. 가식적으로 생글생글거리며 "나는 백신 탑재 유무를 검사하러 들어왔을 뿐이에요"라고 말할 것이다. 뭐 '믿을 만한 사이트'만 다니면 될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정도 보안의식이 있다면 애당초 백신 의무화도 필요없거니와, '스포츠조선' 같은 사이트도 컴퓨터를 '공격' 하는 사이트로 알려져 웹 브라우저에게 차단되어 있는 마당에 어떻게 아무나 그렇게 덥썩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다른 방식도 있다. 정부에서 명박산성 1호, 명박산성 2호, 명박산성 3호 등의 백신을 다운로드받게 한다. 이 명박산성 1호, 2호, 3호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PC에 설치되면서 "이 PC엔 백신이 설치되었소"라고 표식을 하게 된다. 단 부작용.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명박산성 1호, 2호, 3호 이외의 다른 백신은 쓸 수 없을 것이다. 명박산성 1호가 사실 알고보니 바이러스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절름발이 백신이더라도, 정부의 지침을 따르고 포털사이트의 '백신 다운로드 페이지' 맨 윗칸을 차지하고 있는 한 시장점유율 1위는 가볍게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실현 가능성도 없거니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원칙, WWW의 철학에 모두 어긋나는, 검토되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지경인 엉터리 제안을 '보안업체'의 부사장이 내놓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심각하다. 티맥스 윈도 사태에서도 그랬지만, 행정가들은 물론 경영자 중에서도 무척 후진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어째서.
'기초도 없고 철학도 없다'. 이게 솔직한 감상이다. IT 인프라는 훌륭하다. 유선인터넷은 물론 3G 무선인터넷 망도 아주 잘 닦였다. 삼성이나 LG 등은 휴대전화 등 하드웨어를 무척 잘 만든다. 그러나 그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그보다 더 앞서 사람들의 생각, 철학은 무척 진부하고 구세대적이다. 웹의 철학과 의의까지 갈 필요도 없고, 사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아예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쉽게 나온다는 생각이다. 특히 행정가, 정치인, 경영자들, 오히려 인문학을 배우고 법을 배우고, 경제와 경영을 배운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IT, 인터넷 등과 민주주의/시장경제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민주주의도 모르고 시장경제도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정치인, 행정가, 경영자로 있는 현실은 어디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다. 다만 상식을 아는 어떤 사람들, 때로는 민주화 투사라 불렸고 때로는 산업화 역군('진짜' 산업화 역군)이라 불렸던 어떤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고 시장경제를 빚어낸 것이다. 그런데 IT는 우리 사회에서도 특히 젊은 분야다. 역사가 짧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어떻게 조합시킬지 좋은 답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초도 없고 철학도 없는, '생각이 늙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일이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잦은 것이다.
고로 우리는 멋진 교훈을 얻었다. 적어도 IT에서만은, 이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 것. 이렇게까지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다른 안건에서라고 훌륭한 제안을 할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무시하는 것 뿐이다. 이 '생각이 늙은' 사람들의 착각과는 달리 IT를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이끌어나가는 건 아니다.
1줄 요약
최시중님 사랑합니다. / 검찰 수사 면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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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떡밥에 감사를 해야할 지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