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아 강간상해 사건, 궁극적 분노는 언제나 이성적이다
무거운 이야기/정치 | 2009/09/30 22:39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여아 강간상해 사건에 대한 글들을 (나도 모르게) 클릭하고 있으려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긴 인류의 역사에서, 응보로서의 형벌은 실제로 큰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범죄자도 결국 한 인간으로서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감정적으로는 동감하기 힘든 이 얘기도 결국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사회가 체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심하게 된다. 사회의 일반적인 법감정과 괴리된 판결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강력범죄자는 인간도 아니니 인권을 보장받아선 안 된다는 주장에는 절대 공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특히 재범이나 그 고의성이 명백한 경우에 대해서는 국민의 감정을 고려한 응보적 형벌도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 그리고 더불어 - 가해자의 신원정보가 인터넷에 나도는 것을 보며 그 인권에 대한 걱정보다 앞서 시원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또 무슨 조화인지.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이 이상할 정도로 낮다는 생각도 한다. 이것도 인터넷에 많이들 도는 얘기 중 하나다. 여아를 수 차례 강간하고 평생 회복할 수 없는 심대한 상해를 입힌 가해자에게는 12년의 징역형이 내려졌다. 한편, 박근혜 씨의 얼굴에 면도칼로 상처를 입힌 지 모 씨는 10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검찰 구형일 뿐이어서 앞서의 사례와는 조금 다르지만, 조중동 불매운동을 벌인 언소주 대표에게 검찰은 4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물론 입법권과 사법권은 가급적이면 최대한 지지되어야 하는 권력이다. 하지만 - 불매운동에 4년, (심하지 않은) 상해에 10년, 강간상해에 12년이라는 저 숫자는 어떻게 봐도 사회의 지지를 얻기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인간이 저질렀다고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극악무도한 범죄 앞에서 나는 화나 낼 것이지 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법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법과 관련된 여러 철학을 제대로 접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인터넷에 나도는 얘기나 읽고 있을 뿐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한다 한들 그게 법이나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에 비해 결코 낫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 다시 또 생각해보니, 늘 그랬다. 분노는 처음에는 이성을 잃게 만들지만, 그 분노가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상대가 정말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커지면 되려 생각이 많아진다. 그의 잘못, 내 잘못 따위를 곱씹어보다가, 실행하지도 못할 잔인한 계획을 아주 세심하게도 세워 봤다가,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농담삼아 '현자'라 부르던 이 방면의 전문가 친구를 찾아가 상담도 받아봤다가, 그러다가는 끝내 나름대로 가장 좋은 결론을 선택해 실현시킨다. 그것이 설령 나의 감정을 잠재울 수 없는 지극히 불만족스러운 결론일지라도. 그랬다. 궁극적인 분노는 언제나 이성적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의 분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면 좋겠다. 그 분노가 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가해자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식의 '순간적인'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궁극적이고 이성적인 분노가 이 인터넷의 세상을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 그의 잘못을 곱씹어보다가, 실행하지도 못할 잔인한 계획을 아주 세심하게도 세워 봤다가,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법과 철학을 진지하게 공부한 사람들에게 가르침도 청해 보았다가,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결론을 선택해 실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분노가 단순한 감정적 배설을 넘어서서, 이성적이고 궁극적인 분노로 변하여 더 '좋은' 결론을 내고 많은 것들을 바꾸는 거대한 파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족
인터넷에서 읽은 여러 글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글은 아주 짤막한 댓글 하나였다. 누군가가 한국에도 덱스터(미국 드라마의 주인공.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 강력범죄자를 찾아내 살인하는 연쇄살인범)가 있어서 가해자를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글을 썼다. 그러자 거기에 누군가가 바로 그, 무척이나 인상적인 댓글을 달았다. 니가 죽여 병신아. 그 짧은 댓글을 보며 무척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 http://yeinz.kr/blog/trackback/562 (주소를 클릭하면 클립보드로 복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