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dling Prosperity
폴 크루그먼 지음(1994), 김이수 옮김(1997)
부키
대공황의 세계
The World in Depression
찰스 P. 킨들버거 지음(1973), 박명섭 옮김(1998)
부키
흔히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이라고 얘기한다. 여기 폴 크루그먼도 그런 세간의 인식에 동의한 것 같다. 자신의 책 제목을 ‘하찮은 번영(Peddling Prosperity)’이라고 붙이지 않았던가. 또한 차후에 번역 출간된 그의 또 다른 저서는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다.
그건 굳이, 대공황같은 병리적 상태가 일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양심적인 경제학자조차 가장 비인간적인 정책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통화론자 밀튼 프리드먼의 학술사상은 후일 신자유주의란 몸통을 갖고 우리 앞에 찾아왔고, 그 이상으로 위대한 정치경제학자 맑스의 공산주의 사상은 스탈린이나 김정일의 일당 독재로 변질되어 현실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정책가들의 비양심 탓으로 돌리지만, 사실 어쩌면 경제학의 속성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일런지도 모른다. “기대되는 효과에 비해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월스트리트의 비리를 눈감아줘야만 하는 증권거래위원회의 결단은 또 어떠하며, 의식주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이들을 일벌백계할 수 없는 현 정부의 고뇌는 또 어떠한가!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게 경제학이라면, 또한 그 우울함조차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아닐런지.
<경제학의 향연>은 주로 케인시언들과 통화론자들의 대결을 중심으로 경제학술의 발전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유효수요를 중심으로 한 케인시언의 견해와 총통화량을 중심으로 한 통화론자들의 견해, 시장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논쟁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쉽고도 재미있게 펼쳐진다. 한편 책의 말미에서는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를 필두로 한 전략적 무역론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난과 더불어 QWERTY 경제학과 같은 폴 크루그먼 자신의 견해를 간략히 다루는데, 역시 재미있다. 이 두 파트는 서로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원칙 아래 통일성을 유지하는데, 이는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을 존중하며, 학문을 빙자한 정책가들을 비판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는 로버트 라이시 등을 두고는 경제학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 야바위꾼 취급을 하는 반면, 진정성있는 학자들 – 케인즈, 프리드먼, 뉴 케인시언, 맨큐 등 – 에 대해서는 매우 존중하는 태도를 취한다.
<대공황의 세계>는 국제 통화 메커니즘의 붕괴로부터 시작되는 대공황의 세계에 대한 책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채 문제에서부터 재군비(로 인한 2차 세계대전 직전) 까지를 다룬다. 옛날 책이긴 하지만 적어도 케인즈 경제학과 통화주의의 틀은 확실히 갖춰진 이후의 저작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눈으로 읽기에도 비교적 무리가 없어 보인다. <대공황의 세계>는 “정부가 경제에 무지하였기 때문에” 대공황이 발생했다는 간명한 논제를 던진다. 전채배상 문제에 관한 독/프/영/미의 갈등이나, 전쟁 이후 경제를 재건하며 각국이 취한 통화 확대 / 통화 긴축 정책, 국제 리더로서의 소임을 포기한 영국과 미숙했던 미국, 그리고 밀튼 프리드먼 교수가 지적한 디플레이션에 대해 통화 긴축으로 대응한 각국 정부의 무능함 등이 많은 그래프와 자료, 문장 안에서 짜맞춰진다. 대공황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그의 치밀한 시선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돋보인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하지만, 결국 이 우울한 학문에 투신한 ‘우울한 경제학자’들에겐 아무 죄가 없다. 문제는 사실 그 모든 것들을 호도하는 소매상들, 소위 ‘기자’라 불리는 장사치들에게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어떤 경제신문을 펼쳐보거나, 혹 조중동같은 선전지를 들었을 때, 밀튼 프리드먼이나 존 메이너드 케인즈, 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같은 한 세기를 주름잡은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이름이 너무나 정략적이고 얄팍한 술수로 인용되는 것을 발견한다. 인간에 대한 경외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 학자들의 이름 뒤에 숨어, 기자라 불리는 장사치들이 뱀의 혀를 마음껏 낼름거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오직 얄팍한 장삿속에 물들어서 말이다. 그것이 이 우울한 학문을 또 한 층 우울하게 한다.

최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