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음악적 성취나 평론이 아니라 순수하게 앨범 판매량에 기초합니다. 또한 그 앨범 판매량은 오리콘(http://www.oricon.co.jp) 집계를 따랐는데, 오리콘은 일본 내의 소매상에서 판매된 앨범 수를 집계하므로 판매량이 실제 앨범 출하량 또는 세계 판매량에 비해 적을 수 있습니다. 이하의 모든 판매량 수치는 반올림된 것입니다.

1. First Love / 宇多田ヒカル(우타다 히카루) / 1999. 3. 10. / 765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녀는 고작 열여섯이었다. 목소리는 매력적이었지만 발성은 안정적이지 못했고, 가사는 일본어의 매력을 전혀 살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단어 선택이나 운율, 전체적인 주제에 있어서도 낙제점을 받아 마땅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들고나온 이 새로운 스타일 앞에선 이런 수많은 단점들도 모두 무의미했다. 일본의 음악 청자들이 “J-Pop”이라 불리는 일본음악만의 스타일에 질려 있을 즈음, 그녀는 당시 일본 음악계에서는 혁신적이었던 R&B 스타일의 노래 <Automatic>을 들고나와 청자들의 갈증을 말끔히 해소해줬던 것이다.

그녀는 TV나 무대에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으면서도 <Automatic>, <Movin’ On Without You> 등의 노래를 모두 대히트시켜 일본 음악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를 단순히 시대의 유행 정도로 여겼을 뿐, 그녀가 일궈낸 역사적인 기록을 감히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발표한 싱글과 미발표곡을 모아 만든 그녀의 첫 앨범 <First Love>가 일본 최고의 밴드로 일컬어지는 B’z마저 누르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등극했을 때, 그것도 2~300만장 차이로 여유롭게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이 새로운 리더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히키(Hikki. 우타다 히카루의 별명)라는 매력적인 상품을 만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었다.

2. Pleasure / B’z / 1998. 5. 20. / 512만장
5. Treasrue / B’z / 1998. 5. 20. / 443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과거, 현재, 그리고 심지어 미래에 이르기까지, B’z는 일본 음악의 정점이었다. 20년간 정상에서 내려온 적 한 번 없이 4천만장이 넘는 앨범과 3천만장이 넘는 싱글을 팔아치운 그들의 압도적인 기록은 아직도 깨지기 어려워 보인다. B’z를 구성하는 2명의 멤버, 보컬리스트 이나바 코시와 기타리스트 마츠모토 탁은 연주자로서도 일본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며, 특히 마츠모토는 프로듀서나 작곡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Pleasure>와 <Treasure>는 10년간의 음악 생활을 정리하며 2장으로 나뉘어 발매한 그들의 베스트 앨범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B’z이다보니 그들이 베스트반을 낸다는 소식에 일본 열도 전체가 후끈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는데, 단 한 주만에 두 장의 앨범이 모두 2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걸 보면 B’z를 향한 일본 사람들의 사랑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3. REVIEW / GLAY / 1997. 10. 1. / 488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X-JAPAN의 주축 멤버였던 요시키와 히데에 의해 발굴되어 데뷔한 GLAY는 이내 X-JAPAN마저 압도하는 대중적 인기를 손에 움켜쥐게 되었다. 당시 음악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비쥬얼 록 장르가 재평가된 것이 히데의 자살과 그의 음악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GLAY의 압도적인 인기 때문이었음을 생각해보자면, 이 밴드야말로 일본만의 독특한 장르인 비쥬얼 록의 성세를 대변하는 밴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반면 그들의 대표곡 <HOWEVER>를 비롯해, 그들의 히트곡은 대부분 록 음악이라기보다 편안한 발라드 음악에 가깝기 때문에 실제론 비쥬얼 락의 퇴조를 상징하는 밴드로 보기도 한다.

<REVIEW>는 그들을 최고의 대중가수 반열에 올려놓은 발라드 <HOWEVER>를 비롯하여 그들이 3년 반동안 발표한 곡들을 추려 모은 베스트 앨범이다. 전성기에 GLAY는 <REVIEW>를 히트시켰을 뿐 아니라 20만명이 운집하는 거대한 규모의 콘서트를 성황리에 끝냄으로써 그들이 B’z에 버금가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전성기 내 발라드 음악에 주력을 기울이는 GLAY의 음악적 색깔에는 많은 팬들이 실망했다고 하는데, 훗날 <MERMAID>의 발매를 시작으로 이러한 팬들의 요구도 적절히 만족시켜주고 있다.

4. DISTANCE / 宇多田ヒカル(우타다 히카루) / 2001. 3. 28. / 447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일본식 R&B의 아이콘 우타다 히카루의 인기는 <First Love>의 역사적인 대히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Wait & See ~ Risk~>나 <Can You Keep A Secret?>, <Addicted to You> 등 발표하는 노래마다 하나같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등 모두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두 번째 앨범 <DISTANCE>가 화제가 된 것은 단순히 그녀의 노래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흥행상품이 그러하듯이, 우타다 히카루에게도 매력적인 라이벌이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 우타다 히카루가 일본 팝계의 새로운 바람을 상징하는 존재였다면, 다른 한 편에는 전통적인 J-POP의 여왕 자리를 물려받은 하마사키 아유미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명의 톱 가수가 같은 날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던 것이다. 2001년의 일이다.

B’z의 베스트 앨범 <Pleasure>와 <Treasure>가 발매되었던 날 이래, 이 라이벌간의 싸움은 일본 대중음악 사상 최대의 이벤트였다. 역시 아니나다를까, 우타다 히카루와 하마사키 아유미는 단 한 주만에 각각 300만장 내외의 앨범을 판매하며 그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했다. 최종적으로 이 두 라이벌의 싸움은 약 17만장의 근소한 차이로 우타다 히카루가 승리하게 되지만, 당시 조금씩 쇠락의 기미를 보이고 있던 일본 음악계 최후의 빅 이벤트로서 두 가수 모두에게, 그리고 음악계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6. A BEST / 浜崎あゆみ(하마사키 아유미) / 2001. 3. 28. / 430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마사키 아유미는 작은 키와 큰 눈, 인형을 연상시키는 예쁜 얼굴을 가진 아이돌 가수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외모만으로 승부하지 않았다. 훗날 이효리 등이 차용하게 되는 빼어난 패션 센스는 물론, ‘질풍 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직설적으로 호소하는 뛰어난 작사 실력, 심지어 상품으로서 자신을 판매해야 하는 아이돌 가수의 고뇌마저 상품화하는 놀라운 상술까지, 이 모든 것들이 화학 작용을 일으켜 일본 팝 역사상 최대의 아이돌 상품으로 일컬어지는 ‘아유(Ayu, 하마사키 아유미의 별명)’를 탄생시킨 것이다.

‘교주’ 아무로 나미에의 퇴조 이후 그녀는 처음에는 ‘신교주’, 후에는 ‘여왕’으로 불리며 여중생과 여고생들을 사로잡았다. ‘교주’ 아무로 나미에의 인기 비결이 일탈과 자유를 소리치는 그녀의 솔직함에 있었다면, ‘여왕’ 하마사키 아유미의 인기 비결은 십대 청소년이나 이십대 초반 청년의 고뇌와 슬픔, 절망과 딜레마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압도적인 감수성에 있었다. 그녀의 베스트 앨범 <A BEST> 역시 그녀의 인형같은 얼굴 대신 짙고 검은 눈화장에 눈물 한 방울, 흑백 톤의 색상처리와 무서울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자켓 표지를 장식했다.

하마사키 아유미의 기획사는 이 앨범을 우타다 히카루의 <DISTANCE>와 정면으로 충돌시키고 마케팅 역량을 이 앨범 한 장에 집중하여 극대화된 효과를 노렸는데, 이 대규모의 마케팅은 430만장이란 판매고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기록되었다. 워낙 하마사키에 대한 기대치가 컸던 탓이다. 그러나 <A BEST>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마사키 아유미의 인기는 계속 건재했으며, 아이돌 가수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동안 정점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7. globe / globe / 1996. 3. 10. / 414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일본 팝 음악의 최전성기는 역시 천재 프로듀서 ‘코무로 테츠야’의 등장과 함께 찾아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아무로 나미에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코무로는 스스로도 globe라는 팀의 멤버로 활동하였는데, 이미 최고의 팝 프로듀서로 인정받던 코무로 테츠야답게 첫 싱글을 90만장, 첫 앨범을 410만장이나 팔아치우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였다. 이후로도 globe의 인기는 식지 않아, 2번째 앨범과 3번째 앨범도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며 단 3장의 앨범만으로 10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 인터넷에서도 한때 유행했던 개그맨 ‘연식 글로브’는 바로 이들을 패러디한 그룹으로, 그만큼 globe의 영향력이 막대함을 말해준다. 98년 이후로는 음악적 성향을 팝에서 일렉트로니카로 선회했는데, 이러한 변화가 대중적으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여 점차 대중적 인기를 잃어갔다. 그들의 퇴조는 우타다 히카루의 등장, 하마사키의 프로듀서 맥스 마츠우라의 전성기 등과 거의 때를 같이 한다. 이는 당시 일본 팝 음악계의 성향이 코무로 테츠야로부터 더 ‘진지한 척 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8. DEEP RIVER / 宇多田ヒカル(우타다 히카루) / 2002. 6. 19. / 360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First Love>의 기록적인 판매량, <DISTANCE>와 <A BEST>의 맞싸움이 불러온 센세이션. 소포모어 징크스도 없이 승승장구하던 우타다 히카루에겐 정말 두려울 게 없어 보였다. <DISTANCE> 발표 이후 그녀는 <traveling> 같은 싱글을 통해 나름대로 독특한 색깔의 음악을 선보였는데, 이마저도 역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우타다 히카루라는 이름이 일종의 명품 브랜드화(化)한 것이다.

그녀의 세번째 앨범 <DEEP RIVER>는 <traveling>을 시작으로 그녀의 독특한 시도가 많이 들어간 앨범이다. 앨범의 색깔이 전작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동양적인 느낌을 풍기며, 기존 J-POP과의 접점을 추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DEEP RIVER>까지 일본에서 발표한 모든 앨범이 메가히트를 거둠에 따라 자신감을 얻은 모양인지, 그녀는 Timbaland 등을 코프로듀서로 하여 <Exodus>란 앨범으로 미국 음악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Exodus>는 최종적으로 100만장 정도의 나쁘지 않은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그 대부분이 일본에서 판매된 것으로, 미국에서는 한주간 판매순위 160위를 기록한 뒤 이내 20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수치를 겪었다. 우타다로서도, 기획사로서도 기억에 남기고 싶지 않은 대실패였을 것이다. 일본 최고의 R&B 싱어라도 세계 최대의 음악 시장 미국에서는 통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9. Delicious Way / 倉木麻衣(쿠라키 마이) / 2000. 6. 28. / 353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우타다 히카루의 센세이션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거리에 새로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기존 J-POP 스타일과 다르다는 점에서 한편으론 우타다 히카루를 연상시켰지만, 우타다와 달리 맑고 청아한 음색이 특색이었다. 사람들은 곧 그 맑은 매력에 빠져들었고, 이 노래 <Love, Day After Tomorrow>가 실린 싱글은 150만장에 가까운 기록적인 판매량을 올렸다. 또 한 번 센세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쿠라키 마이라는 이름의 그녀는 흑백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얼굴을 공개했을 뿐, 무대에도 방송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우리에게도 ZARD 등으로 잘 알려진 ‘빙(Being)계열(Being Music Fantasy 소속)’ 가수들의 독특한 마케팅 전략이었는데, 이 전략 덕분에 쿠라키 마이의 몸값은 더욱 높아져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우타다 히카루의 강력한 라이벌”로 칭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후 <Stay by my side>, <Secret of my heart> 등 후속작들도 거듭 성공을 거두었고, 이 기세를 몰아 발매된 첫 앨범 <Delicious Way>가 첫 주 22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거두며 사람들은 “우타다 히카루의 기록을 깰 수도 있다”는 섣부른 추측마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뒷심이 부족하여 최종 스코어는 350만장 수준에서 그쳤다. 1집의 뒷심 부족이 그녀의 미래를 예견하기로 한 것일까, 그녀의 인기는 점점 사그러들어 최근에는 데뷔 때와 같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10. Time to Destination / Every Little Thing / 1998. 4. 15. / 352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CF 음악을 만들던 뮤지션 이가라시의 주도로 만들어진 Every Little Thing은 전형적인 J-POP 가수였다. 기타와 키보드를 중심으로 한 팝 밴드 체제를 갖추고 있고, 곡의 스타일도 전형적인 J-POP 스타일이었으며, 보컬 모치다 카오리 역시 맑고 곧게 뻗는, 늘 일본인들이 선호해온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미 첫 앨범 <Everlasting>이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최고의 인기 스타로 발돋움한 그들은, 공전의 히트곡 <Time goes by>를 실은 두 번째 앨범 <Time to Destination>을 통해 역사적인 판매 기록을 세웠다. <Time goes by>는 사실 뻔한 J-POP 스타일의 발라드 곡이었지만, 그래도 그 ‘뻔한 노래’ 역시 빼어난 멜로디와 만나니 많은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아련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Time goes by>는 그제껏 강한 비트의 팝을 주로 선보여왔던 Every Little Thing이 처음 시도한 발라드 음악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깊다. 그러나 이후 팝 음악 시장의 흐름이 우타다 히카루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흐름으로 넘어가고, 그간 Every Little Thing의 음악 작업을 도맡았던 이가라시가 탈퇴하며 Every Little Thing의 명성도 점차 퇴조해갔다. 이가라시의 탈퇴 이후에도 <fragile> 같은 좋은 발라드 곡을 발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 Every Little Thing의 인기는 과거의 황금기에 비하면 많이 사그러든 편이다. 한편 보컬 모치다 카오리는 패션 리더로서도 유명하다.

  5 개의 반응

  1. 저는 Calling을 부른 B’z밖에 모르겠군요. 모두 들어보고 싶네요.

  2. 이렇게 좋은글이.. ^^ 잘읽고 갑니다.

  3.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음반들이 대부분 해당 가수의 베스트 앨범인데 비해 우타다 히카루는 정규 앨범으로 베스트 10의 세 자리나 차지했다는 게 참 대단합니다. 요즘 환경에서 저런 기록적인 음반 판매량이 다시 나오기는 힘들겠죠. :’(

  4. 크으. 개인적으론 쿠라키 마이 좋아하는데 이 아가씨는 1집부터 쭈욱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후반 앨범들은 곡 전체 중에서 귀에 들어오는 곡도 별로 없고 타이틀이나 싱글도 굳이 좋은 곡 놔두고 이상한 곡을 내세우는 것 같습니다..;;
    쿠라키 스타일은 우타다 히카루하고는 많이 다른데 ‘love, day after tomorrow’ 나 ‘key to my heart’같은 경우가 괜찮았죠. 뒤로 갈수록 많이 실망했는데 최근 앨범인 diamond wave에서 홀로그램이라는 노래는 정말 괜찮더군요. 아직은 믿고 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5. 퍼갈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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