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출신이란 게 부끄럽네요.”
2003년 런던, 자신의 콘서트장에서 ‘나탈리 메인즈’는 훗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발언을 내던졌다. 그녀는 원래 미국의 대표 컨트리 밴드 ‘딕시 칙스(Dixie Chicks)’의 보컬이었고, 이미 최고의 앨범 판매고와 평단의 호평을 함께 손에 쥔 연예인 이상의 연예인이었다. 하지만 런던에서 부시를 비난하는 그 한 마디를 던진 이후, 그녀는 살해 위협을 받고 라디오 방송의 조직적인 방송 거부에 직면하게 된다.
딕시 칙스가 그 발언을 한 것은 세계를 뒤흔든 9.11테러에 대응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그런 부시 대통령이 일개 ‘딴따라’에게 노골적인 비아냥을 들었으니 극우주의자들의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 극우주의자들은 “USA”를 외치며 딕시 칙스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닥치고 노래나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Shut up and sing, or your life is over)”는 위협 편지를 보내는 등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조차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외국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극우주의자들 편을 들곤 했다.
컨트리 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국들은 더이상 딕시 칙스의 노래를 틀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DJ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컨트리 음악계의 주요 인사들 중에는 친 공화당 파에, 경직된 보수주의 인사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아니고 일개 가수의 발언 따위에 그런 ‘윗분들’에 의한 ‘조직적’인 박해가 있었겠느냐고? 노스캐롤라이나 주의회가 딕시 칙스에게 발언을 사과하고 군인을 위한 무료 공연을 열라는 결의안을 채택하기까지 한 걸 보면, 충분히 있었을법한 얘기 아닐까? 심지어 부시 대통령 본인마저도 그 발언에 대해 강한 반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렇게 인생이 송두리째 뒤집혀버린 후에도 딕시 칙스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발언의 당사자인 나탈리 메인즈는 물론, 함께 살해 위협이나 받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다른 두 명의 멤버도 결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딕시 칙스는 자신들을 향한 무시무시한 칼 뒤에 극우단체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음을 파헤쳤고, 사람들에게 자유의 의미와 자신들의 정당함을 납득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거대한 국가주의의 파도 속에서 그녀들은 싸웠고, 저항했으며, 그리고 비로소 명곡을 탄생시켰다. <좋게 좋게 지낼 준비 따위 되어 있지 않아(Not Ready To Make Nice)>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극우주의자들의 폭력에 굴복할 생각이 없으며, 진정한 자유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임을 못박은 가장 세련된 선언문이었다.
“그 일이 모든 걸 바꿨지만 난 지금이 더 마음에 들어”, “‘용서’라, 말만 들으면 참 멋져 보이지”, “슬픈, 너무나 슬픈 일이야. 엄마가 딸에게 이방인을 미워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건”. 딕시 칙스의 진심이 담긴 주옥같은 가사들이 담긴 이 노래는 진보적 인사들의 대환영을 받았다. 세상이 돌아가는 분위기도 그때와는 달랐다. 이라크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으로 비난받고 있었고, 반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딕시 칙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이 수 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점점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극우주의자들의 목소리는 더이상 보통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딕시 칙스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그래미로부터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주요 3부문을 모두 선물로 받음으로써 극우파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단순하게만 보자면, 이 사건은 극우주의자들의 폭력으로부터 자유주의자가 승리함으로써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권선징악적 결말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딕시 칙스는 살해 위협을 받았고, 대중음악인으로서 자신의 명성과 인기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위협적인 편지를 보낸 극우주의자들과 멍청한 결의안을 채택한 정치인들도 가해자였지만, 그 누구보다 큰 가해자는 대중이었다. 대중은 극우주의자들의 반동에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거나, 혹 적극적으로 찬동함으로써 딕시 칙스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 것이다.
그러나 딕시 칙스가 명예를 회복하였을 때, 극우주의자들은 그 어떤 벌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떠돌아다녔고, 때로는 이민자들, 때로는 유색인종들, 때로는 비기독교인들, 또 때로는 성적 소수자들이 그 날카로운 이빨에 찢겨나갔다. 그리고 물론 대중들은 극우주의자들의 반동에 여전히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거나, 혹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있다. 딕시 칙스가 긴 투쟁 끝에 자유의 의미와 공화국의 정신을 사람들에게 일깨웠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공화국의 대중들이,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가장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타인을 핍박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잠시 딕시 칙스가 그 대상이 되었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탈출한 것이라고 말이다. 자유민주공화국의 대중들은 탈출하여 자유의 참의미를 일깨운 딕시 칙스에게 그래미를 안겨주며 찬사를 보냈으나, 또한 동시에 다른 사냥감을 찾아 그의 자유를 박탈하고 폭력을 행사하였다.
우리는 자유를 신봉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로, 무늬뿐인 자유다. 딕시 칙스 사건은 결국 자유의 소중함과 더불어, 우리가 진정한 자유의 본질을 잡기 위해서는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하물며, 한나라당이 200석을 차지할 준비를 하고 있는 한국에서라면 어떨까. 이 나라에서는 그 ‘무늬뿐인 자유’라도 만나볼 수는 있는 것일까. 이것은 정말 슬픈 이야기다.

무늬뿐인 자유도 없다는건, 이명박 동영상을 올린 김연수씨가 이번에 결국 유죄로 벌금 80만원 선고받았다는 것에서도 너무 잘 보이는 것 같아 슬픕니다.
정말 정치 후진국다운 일이었습니다.
선관위, 이번에 투표율 부진으로 문책들 좀 당할 것 같은데, 문제의 본질을 좀 봤으면 좋겠어요. 아니 세상에, 무대고 동아리방이고 다 때려부숴놓고 축제를 하라니 대체 누가 참가한답니까.
아직도 자신의 황빠질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에 대해서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죠. 개그맨 유상무 같은 애들이 방송을 통해서 선동질을 해놓고서 어디 가서 사과 한마디 했단 소릴 들어보질 못했으니 말이죠.
언젠가 비슷한 일이 생기면 또 똑같은 일을 하겠죠. ㅎㅎ
그래도 언젠가 바뀌리란 희망은 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