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ear – Lily Allen

릴리 알렌의 데뷔앨범 <Alright, Still>로부터 어떤 경외감이나 놀라움 같은 것을 찾아내기는 무척 어렵다. 장난스럽게 배치된 전자음과 통통 튀어오르는 듯한 건반, 혹 현악, 심지어 관악이 멋진 협연을 이룬 이 데뷔 앨범은, 고급스런 정식보다 나도 모르게 계속 씹고 있는 과일맛 캬라멜을 연상시킨다. 물론 경외감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이 앨범의 가치가 낮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이건 그저 효용의 차이일 뿐이다.

<The Fear>는 두 번째 앨범 <It’s Not Me, It’s You>의 선행 싱글로 나온 곡이다. 음악의 작법 자체가 데뷔작과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사운드든 멜로디든 인트로부터 가장 ‘자극적인’ 맛을 보여주곤 했던 전작과 달리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인 현(弦)의 튕김이 초입을 장식하고, 곡 전반에는 잔향(殘響)이 남아 몽환적인 세계로 청자를 이끈다. 새콤했던 날것의 오렌지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오렌지 소스로 바뀌어, 아름답게 장식된 연어 스테이크 위에 뿌려진다. 훌륭한 주방장의 훌륭한 정식 요리다.

봄 – 이장혁

추운 12월을 맺는 마지막 노래는 이장혁의 <봄>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기타와 보컬이 멜로디의 주축을 담당한다. 심지어는 드럼이나 베이스같은 리듬 악기의 소리마저 철저하게 ‘죽어’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보컬과 기타, 두 멜로디마저 완전한 날것의, 지독히도 앙상하고 메마른 느낌을 풍길 뿐이다. 목소리와 기타의 연주에는 ‘봄’이란 이름이 지어졌지만, 사실은 그들은 봄을 기다리는 겨울일 뿐이다.

초반에는 건반, 그리고 곡 후반으로 가면서 현악이 그 앙상함을 메만지듯 함께 연주된다. 그러나 그것이 기타의 지독히도 ‘건조한’ 연주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아니다. 곡이 끝나가며, 기타는 점점 더 쇠락해져간다. 봄은 겨울을 감싸안지 않는다. 봄은 겨울을 쇠락케 하고, 스스로를 꽃피울 뿐이다. 그런 고로, 이건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잠들어가는 몰락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설얼은 겨울의 길 위에 더할나위 없이 어울리는, 몰락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Track 4 – 이소라

<바람이 분다>는 지독히도 절망적이고, 죽을 것처럼 음울하며, 또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 한 곡의 재림을 다시 또 기다렸던 모양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녀의 7번째 앨범은 <눈썹달>이 아니다. 이 앨범의 그 어떤 노래도 <바람이 분다>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앨범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전작을 오히려 앞서간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에는 대중을 겨냥한 음악이 모름지기 가져야 할 하나의 미덕이 부족해 보인다. 사람을 잡아끄는 단 한 소절의 멜로디, 소위 훅(Hook)이라 불리는 것이다. 한 대의 기타와 이소라의 목소리, 그 반복되는 가락이 사실상 노래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Track 4가 되려 가장 귀에 잘 박히는 까닭이 그것일 것이다. 후크송, 후크송 하는 세간의 거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 갈고리는 여전히 좋은 노래와 나쁜 노래를 가르는 가장 좋은 기준 중 하나다. (이소라 씨의 목소리가 전작에 비해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쩐지 이 앨범에 쉽사리 호의를 갖기 어려운 이유중 하나다.)

  3 개의 반응

  1. 이소라씨의 목소리 퇴보는 다이어트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눈썹달의 트립합적인 곡들이 좋긴 좋았는데 말이죠

    • 실제로 라이브 무대를 보니 다이어트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음역대를 잘못 잡은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인 듯. 이소라 씨의 목소리는 낮은 음에서나 높은 음에서나 모두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데, 높은 음에서는 발음이 좀 뭉개지는 것이 단점인 듯. (예전에는 낮은 음에서도 뭉개졌던 듯; ) 근데 이번 앨범의 노래들은 높은 음을 너무 오래 써서, 곡 전체적으로 가사를 알아듣기 힘든 경향이 생긴 것 같음.

      Track 1 같은 데서는 몸에서 힘을 너무 빼신 것 같고……

    • 듣고 보니 매우 그렇네요 Track 8 의 높은 후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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