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성공을 위해 6년간의 부자유를 강요하는 것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저술과 녹취를 모은 책 <진보의 미래>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은 ‘아이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하는 것, 그렇게 해서 성공을 쟁취케 하는 것이 정말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해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첫머리에 제기한 질문은 사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던진 화두와는 다소 다른 관점인데, 어쨌든 나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미래의 성공을 위해 6년간의 부자유를 강요하는 것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열 네 살에서 열 아홉 살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첫사랑을 할 것이고, 처음으로 술을 배울 것이고, 또 처음으로 담배를 배울지도 모른다. 가슴이 쿵쾅대는 첫키스를 할 테고, ‘말세다 말세’를 외치는 어른들도 있겠지만 온 몸이 떨리는 첫경험을 하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일상과 일탈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것,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내가 할 일을 찾아가는 것 사이에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것이다. 때로는 자살을 생각할지도 모르고, 스킨스(skins)를 동경할지도 모르지만, PC방에서 리치킹을 잡으며 그 무거웠던 고민을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날려버릴 수도 있다.

자기를 찾는 시기고 수많은 경험들을 처음 해 보는 시기다. 그래서 ‘중요하다’는 형용사보다 ‘소중하다’는 형용사가 훨씬 잘 어울린다. 정작 그 아이들은 “레알 닭살돋네요”를 중얼대며 낄낄대겠지만 말이다. 아니, 아니다. 설령 이 6년이 소중한 시기가 아닐지라도 얘기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훗날의 60년을 위해 6년을 희생하라는 얘기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훗날의 60년이 소중하듯이 이 6년도 소중하다. 시간이 더 길다고 해서 가치가 꼭 더해진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사실 – 그 6년을 희생하라는 게 정말 효율적이기나 할까?

시사인의 기사에서는 선행학습의 효과는 착시라고 얘기한다. 뭐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대강 이해는 간다. 중학교 3학년 정규과정을 마치고 <수학의 정석>을 읽어봤지만 이건 그냥 공식을 외웠을 뿐 그걸 제대로 이해한 건 아니었다. 수학이 아니라 산수를 공부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정석>은 무슨 볼드모트가 쓴 악마의 주술서처럼 보였다. 그런데 고작 수 개월 후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다시 읽은 <수학의 정석>은 상당히 느낌이 달랐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맛만 보다 금새 덮어버렸으니, ‘두 번째 보는 것이니 당연히 더 이해가 잘 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2년 후 수능 준비를 위해 다시 본 <수학의 정석>이 또 다른 느낌이었던 건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공부라는 것이 단순히 책 한 권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사고를 통해 체계적으로 ‘밟아올라가는’ 것이라면, <수학의 정석>을 중학생이 본다는 것은 공자가 말한 엽등(獵等, 무리하게 단계를 뛰어넘어가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루 종일 공부만 한다고 해서 능률이 높은지도 의심스럽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유명한 학원에서 하는 입시설명회에 간다”며 홍대 앞 음악 클럽에 놀러가곤 했다. 자주 놀러간 건 물론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였을까. 뭐 입시설명회에 간 애가 땀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왔으니 부모님도 대강 얘가 어디로 샜다는 건 눈치채고 계셨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홍대 앞에 놀러갔다고 하면 ‘미쳤다’는 반응을 보일 어른들이 꽤 많을 테지만, 그 시간에 홍대 앞에 없었다 해도 내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여가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부모의 감시 속에 책상 앞에 갇혀 공부하는 척이라도 하며 무기력하게 그 여가를 보낼테고, 누군가는 실컷 웃고 떠들고 즐기면서 알찬 여가를 보낼 것이다. 진짜 ‘공부의 신’이 아니고서는 놀지 않고 공부할 순 없다.

보통 성인은 9시부터 6시까지 근무를 한다. 물론 법적인 얘기긴 하지만. 어쨌든 그 시간동안에도 100% 일에 집중하는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7시부터 12시까지 공부를 할 것을 요구한다. 가당키나 한 요구란 말인가. 이런 것은 불가능하다. 고등학교 때 나는 친구들과 ‘사당오락(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는 세간의 유행어를 패러디해 이런 말을 만들었었다. ‘사당오락육당칠당팔당구당십당’. 뭐 네 시간 자는 놈은 인간이 아닌 거고, 멍청하게 그런 인간이 아닌 놈들을 따라잡겠답시고 다섯시간만 자니 하루종일 비몽사몽으로 지내다 대학교에 떨어지는 거다, 여덟 시간 아홉 시간씩 잤다면 아마 붙었을 것이다, 뭐 그런 얘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 만든 얘기인 것 같다. 보통 청소년은, 아니, 잠이 엔간히 없는 청소년도 하루 다섯시간 자고는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공부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0교시를 만들고 10시까지 학교에 가둬놓고 12시까지 다시 학원에 가둬놓는다. 그렇게 다른 모든 것을 접어놓고 공부만 해야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공부가 아니라 그 재밌다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도 풋볼 매니저도 그렇게는 못 한다.

6년을 희생하라는 건 정말 너무 우스운 논리다.

6년간의 불행한 삶이, 무한히 계속되는 판돈 올리기의 반복이 이후 60년간의 행복한 삶을 보장한다는, 1가구 1자녀 시대의 논리를 타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들을 부자유하게 만들고 지금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미래의 행복을 담보한다며 그들을 옭아매는 것은 실상 합리적인 전략도 못 된다.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공부도 해야 한다. 공부만 하진 못한다는 얘기다. 잠도 자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심각한 고민도 해야 한다. 어른들이 그렇게 사는 것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산다고 서울대 갈 수 있던 애가 서울대 못 가는 건 아니다.

하기사 <공부의 신> 따위의 드라마가 공영방송에서 방송되며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마는. 뭐 이 드라마나 저 드라마나 막장이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공부의 신>보단 <skins>가 더 ‘도덕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사족
<드래곤 사쿠라>인가 <드래곤 자쿠라>인가 하는 드라마를 애당초 만들어낸 일본인들이야말로 정상은 아닌 듯

  4 개의 반응

  1. 100% 일에 집중하는 직장인은 없다…. 공감합니다 ㅋㅋ보고서에 보고서, 보고서에 보고서가 쌓여 있는데도 이렇게 블로그질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저도 출장가야 되는데 귀찮…;;

  3. < 드래곤 사쿠라> 이전에 이미 < 드래곤 볼>을 필두로 하는 소년만화 등장부터가 정상이 아닌 게죠.
    … 지금도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 유리가면>도 정상적인 만화인가 상당히 의심됩니다.

  4. 사실 미국식 슈퍼히어로물도 있지만;;;;;;
    공상만화인 드래곤 볼에서야 ‘초사이어인 변신’이 일발역전의 필살기든 말든 그냥 공상이니까 그렇다 치는데….. 스포츠만화인 캡틴 츠바사에선 ‘사이클론’이 그랬고, 이제 학원만화인 공부의 신에서조차 ‘필승 공부법’이 필살기로 나오고 있죠. 일본 만화를 보면 필살기, 선택받은 용자, 핏줄, 뭐시기뭐시기의 후예, 이런 허무맹랑한 공상이 점점 현실의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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