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독교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비하하는 말인데, 아프가니스탄 선교단 피랍사태 등 다양한 사건이 중첩되면서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인터넷상의 악플로만 취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신교에 대한 여론의 반감은 크고 또 뿌리가 깊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인으로서 개독교 같은 말이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생각이 바뀐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경제학자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폴 크루그먼은 여러 칼럼에서 공화당의 보수주의자들(미묘한 뉘앙스를 보다 살려 번역하자면 ‘수구세력들’에 가까울 것이다)과 기독교의 관계를 지적하며,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정치 간섭이 심각한 수준임을 주장했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면 되니 안 되니 하는 논쟁이 아직도 일어나는 상황이니 외국인으로서도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할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사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 원리주의자, 보다 광범위하게 말하자면 기독교계가 정치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려는 정황이 자꾸 눈에 띈다. 특히 순복음교회나 금란교회같은, ‘한국 최대’라는 말이 수식어로 붙는 초대형교회가 이런 풍조의 선두에 서고 있다. 또한 그 간섭은 단순히 종교적 이슈 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의 활동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심대해졌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앞두고 기독교계가 보인 반응과 그들이 쏟아낸 논평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압권이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의 이유로 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입안예고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계의 반발 등으로 인해 여기에서 성적 지향, 학력, 병력, 출신국가,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언어 등의 이유가 결국 빠지고 말았다. (관련 기사)
그러나 기독교계가 차별금지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을 비난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 기독교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특히 보수 기독교계에게는 고깝게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문제는 보수 기독교계의 이런 반응이 실제 국가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 자유,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얘기한 헌법 제 20조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특정 종교의 경전에 의거한 특정 종교의 논리가 국가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무개념한 발언으로 이미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 이런 기독교계의 노골적인 정치 간섭은 더욱 심각해졌다. 저 유명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원로(전 목사)는 기도회 자리에서 “광우병 괴담은 마귀의 꼼수”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 최대의 감리교회라는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는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성도들의 기도로 좌파의 두 뿌리가 뽑힌 것”이라고 표현하거나 촛불시위를 겨냥해 “빨갱이를 잡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의 망언을 쏟아냈다. 뿐만 아니라 추부길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 홍보기획 비서관은 감사예배 자리에서 “사단의 무리가 이 땅에서 활개치지 못하도록 해 달라”는 등 광화문 촛불시위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조용기 원로는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김홍도 목사는 아들에게 당회장 자리를 물려주어 기독교계 내에서 비판받은 적이 있는 인물이다. 또 추부길 씨는 2009년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게 되는 인물이다. 이 사람들이 과연 빨갱이와 사단의 무리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운 일이다.
물론 기독교계의 진보인사들은 이런 기독교계의 현실에 개탄하고 나름대로 개혁을 시도하기도 한다. 실제로 조용기 전 목사나 김홍도 목사, 추부길 전 비서관 등의 비리나 망언이 알려지게 된 것은 기독교계 내부의 성찰과 내부비판에 기댄 바 크다. 하지만 이미 거대교회는 너무 커졌고, 너무 큰 권력을 손에 쥐었다. 반면 기독교계의 진보인사들은 비록 양심적이지만 그 세가 너무 작다. 진보인사들은 거대교회를 “성경이 말하는 이단에 가깝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이 주장에 매우 동감하면서도 과연 진보 기독교계가 이 거대교회들, 순복음교회나 금란교회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무척 의문스럽다. 따라서, 기독교 원리주의가 사회 규범을 지배하기 이전에 이미 기독교 원리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퍼진 것은 긍정적인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 개혁이 불가능할 지경이라면 엄청나게 강력한 외풍(外風) 밖에는 이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는 까닭이다. 개신교에 대한 비난여론이 더욱 광범위하고 깊게 퍼진다면 보수 기독교계의 발언은 사회에서 별 가치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고로 기독교의 미래를 염려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가 더욱 비난받기를 바란다. 비록 그 발언이 성숙한 것이 못된다 해도 개독교 같은 말이 차라리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헌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사회 규범에 손을 대는 것보다야 차라리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 소리를 듣는 것이 훨씬 낫다. 그 치기어린 비난이야말로 보수 기독교계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사회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방벽이 될 것이다.

  10 개의 반응

  1. 저 또한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정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또 한번의 종교개혁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구요.

    이름은 개신교(改新敎)라지만 가장 보수적이고 경직된 집단 인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외부의 시선을 그 것 그대로 받아 들이고 고쳐야 할 점은 고쳐야 하는데 그 고쳐야 할 점을 외부로 부터 지켜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요즘 이 구절을 새기고 다니고 있습니다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마가복음 13:1-2).”

  2. 옙. 그 시대의 썩어빠진 성전들과 지금 개신교 대형교회의 모습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 같아요. 모르긴 몰라도 대형교회의 저 목사들은 양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 같네요. -_-a

  3. 종교를 종교이도록 만들어야죠. 그래서인지 성경 독서나 뜻하지도 않았던 신학도 지금 제 관심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공동번역성서를 좀 읽고 싶은데 찾기가 힘드네요. 전문 서점에 문의해봐야 하려나…….)

  4. 신학은 너무 어려워서 손댈 엄두가;;; 아마 기독교 전문서점을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ㅎㅎ

  5. 굳이 인쇄된 책의 형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공동번역성서는 http://www.holybible.or.kr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역본과 영문성경까지 대조해서 읽을 수 있기도 해서 자주 애용하곤 합니다.

    주인장이 크리스찬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줄이거나 혹은 꺼리는 것처럼 보여서
    그간 많이 궁금했었는데요. 짐작한대로 이런 속사정이 있었군요.

    ‘개독교’로 폄하받는 것에 나름 의의가 있다는 새로운 의견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개독교’ 현상의 이면에는 타종교인 혹은 무신론자의 몰이해가 섞여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지요.
    부도덕한 정치권력의 정신적 토대가 되어가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서만 ‘개독교’를 인정하려 합니다.

    쓰고 나니 같은 말을 제 방식대로 표현한 것이 된 듯하네요. 아무튼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6. 홀리바이블은 예전에 구약시대를 소설로 써볼까 하는 뻘계획 때 자주 들어가 본 사이트네요. ㅎㅎ

    당연합니다. ‘개독교’ 같은 발언에 깊이가 없음은 물론이고, 넘쳐나는 기독교 비판 역시 종교나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뒷받침하고 있진 못하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기독교의 세속화, 권력화가 너무 빠르고 또 너무 심각한 탓에 그만큼 강하고 자극적인 비판, 비난이 없고서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지 않을까, 이런 부분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7. 종교인은 가난하고 힘없고 약한 자의 편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에 반한 결과라 봅니다.

  8. 고로 기독교의 미래를 염려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가 더욱 비난받기를 바란다. – 어쩌다 신실한 교인이 비속어에 기대 자신의 교회가 타락하지 않기 바란다 얘기하게 된 걸까.

  9. 전병욱 목사 “교회 비판하는 사람들, 정작 전도 안해”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성도의 타락”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가 “정작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전도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전 목사는 지난 15일 주일설교에서 “목회자와 교회 임직자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신은 진실되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이들은 교회 현장에 남은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184539

  10. 만들면 오마이에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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